그런데 신기하게도 노트에 이런 금연과 재흡연 과정에 대한 감상을 몇 차례 반복해 기록하던 어느 날 나는 더 이상 담배를 피우지 않게 되었다. 담배를 피우려다가 문득 ‘한 모금만 들이켜도 그 허망함이 다시 찾아올 텐데 꼭 피워야겠니?’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고, 그 이후부터는 스스로 놀랄 정도로 흡연 욕구를 쉽게 참을 수 있었다. 마침내 담배를 끊게 된 것이다.

통제 욕구 도는 통제에 대한 자신감은 종종 내적 욕구의 위력을 과소평가하는 결과를 낳는다. 혹시 금연이나 다이어트를 시도할 때 사전에 몇 번이나 실패할지 예상해서 계획을 짜본 적이 있는가? 즉 내가 의지력을 발휘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통제에 대한 자신감은 무모한 낙관주의의 원천이다. 또한 이는 우리가 의지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을 때 맛보게 되는 모든 부정적 정서의 원천이기도 하다. 한 번의 실패로 인해 '알게뭐야'라는 심리가 발생하고, 결국 다이어트를 시도한 사람이 마음먹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많이 먹게 된다(역규제 섭식).

자기 절제에는 신체 운동에 비해 훨씬 적은 양의 에너지가 소비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의지력을 발휘할 때 쉽게 에너지 부족을 느끼는 걸까? 우리 뇌가 에너지 소비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이다. 즉 전두엽의 에너지 소모를 포착하면, 생존과 직결되지 않는 에너지를 소비하는 자기 절제 활동을 제일 먼저 중단시킨다. 이처럼 쉽게 부하가 걸릴 에너지를 동시에 여러 군데에 사용해야 한다면 더욱 심한 곤란을 겪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금연과 다이어트를 동시에 시도한다면 둘 다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한 가지 목표를 세우고 달성한 다음 다른 목표를 실행하는 편이 훨씬 현명하다.

포도당 에너지는 의지력을 비롯해 우리 사고와 결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저혈당 환자들의 경우 평균적인 사람들보다 집중과 부정적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다. 한 연구에서 청소년 범죄자의 90퍼센트가 평균보다 혈당이 낮았다고 한다.

당신 잘못이 아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억제하려고 노력하면 무의식은 그 억제에 성공했는지를 끊임없이 감시한다. 그 생각을 멈추려 해도, 그럴수록 더 떨쳐버리지 못한다. 어떤 본능이든 억제하려고만 하면 그 반작용이 더 강하게 작동한다. 흡연 욕구나 식탐을 억제하면 더욱 강한 갈망으로 되돌아올 뿐이다. 우리는 내적 욕구를 통제할 수 없다. 내적 욕구를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잘못된 생각이다. 처음부터 통제는 답이 아니었다.

자학에서 수용으로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학에서 ‘실패 수용’으로 인식을 전환하는 것이다. 우리는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학에서 수용으로 인식을 전환하면 실패에 따르는 부정적 감저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다. 실패가 예정되어 있는데 심하게 실망하고 자책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리벳 실험

준비전위 시점(-0.35초) - 인식 시점(0초) - 행동 시점(+0.15초). 준비전위가 인식보다 0.35초나 앞서 발생했다. 즉 내가 생각하기도 전에 내 뇌에서 전기 스파크가 먼저 일어났다.

의지력의 본질을 이해하는 의식 진화의 두 가지 키워드가 리벳 실험 결과에 들어 있다. ‘관찰’과 ‘시뮬레이션’이다. 의식이 무의식의 발화를 탐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관찰). 그리고 우리는 실제 행동의 작위, 부작위를 행사하는 데 항상 0.15초의 시간 여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즉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된 셈이다(시뮬레이션).

인간은 최고 품질의 선택 기계다.

자기 관찰은 불교에서 언급하는 ‘깨어 있기’와도 같다. 자기 관찰은 자기 절제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이완 반응을 유도하여 마음과 몸을 건강하게 유지해주는 효과도 있다.

관찰을 확장하다

관찰은 우리 내면뿐만 아니라 외부로 확장해 수행할 수도 있다. 많은 경우 확장된 관찰 행위의 효과는 우리 내면에서 수행될 때보다 더 높게 나타난다. 확장된 관찰 행위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글쓰기’다. 글쓰기 행위의 본질은 우리 내면을 객관적으로 분리된 외부 공간으로 이전하는 것이다.

마시멜로 테스트 후속 실험에서도 시뮬레이션은 큰 효과를 발휘했다. 아이들에게 기다리는 동안 재미난 생각을 해보라고 제안한 뒤 방을 나섰다. 이 경우 아이들은 평균적으로 10분 이상을 기다렸다. 그런 주문을 받지 않은 아이들은 평균 1분 이하를 기다렸다. 의지력을 발휘하는 대안을 미리 준비하는 시뮬레이션은 자기 관찰 능력을 더욱 강화하는 선순환 효과를 낳는다. 또 강화된 자기 관찰 능력은 자기 절제력을 더욱 높인다.

SOS(simulation-observation-selection) 모형. 첫 단계인 시뮬레이션에서는 자기 절제가 필요한 상황을 미리 상상해야 한다. 어떤 유혹의 방아쇠 사건이 발생할지 등을 예상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대응 방안까지 미리 상상해본다. 두 번째 단계는 관찰이다. 이제는 실제 상황에서 방아쇠 사건을 관찰해야 한다. 사전 예고 없이 아무 이유 없이 불쑥 나타날 때도 있다. 그러나 진실의 순간을 마주하고 관찰해야 한다. 세 번째 단계는 계획된 행동을 선택하는 것이다. 행동 계획은 상황에 따라, 각자의 여건에 따라 달라진다. 중요한 것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사전에 행동 대안들을 준비하고, 선택 단계에서는 준비된 대안 중 한 가지를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 단계는 처음의 시뮬레이션 단계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런 순환이 되풀이될수록 의지력 연습은 보다 수월하게 이루어지며, 보다 자동화된다. 단 SOS 모형을 구체적으로 적용할 때 다음 두 가지 사항을 명심해야 한다. 첫째, 의지력 연습의 원대한 취지를 이해하고 큰 포부를 가져야 한다. 금연이나 다이어트는 단순한 행동의 변화 이상을 의미한다. 20만 년 진화의 기술을 자신의 세대에 더욱 촉진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당신은 관찰과 시뮬레이션의 촉진이라는 진화의 위대한 주제와 함께하고 있다. 위대한 이상 앞에 작은 실패는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니다. 둘째, 개별 기법이 아니라 SOS 모형에 내재된 의지력의 본질에 주목해야 한다. 의지력의 본질을 이해한다면 자신에게 맞는 특정 기법을 쉽게 찾을 수도 있고, 자신만의 방법을 개발할 수도 있다.

SOS 모형에 따른 금연 방법은 굳은 결심으로 단 한 번에 거두는 성공을 추구하지 않으며, 오히려 몇 번에 걸친 실패를 전제로 한다. 점진적 금연법이 아닌 경우, 금연 맹세 자체에 엄청난 압박감을 느끼고 금단의 고통을 더 크게 느낀다. 이제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살펴보자. 먼저 당신은 스스로 예상하는 금연 기간을 설정해야 한다. 그 동안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바로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이다. 별도의 글쓰기 형식과 기록 주기도 없다. 휘갈긴 메모도 괜찮다. 만약 도저히 참을 수 없다면 피워도 된다. 그러나 전제 조건이 있다. 바로 피우기 직전에 발생하는 흡연욕을 기록하는 것이다. 그리고 피운 후의 감정도 남겨야 한다. 환희도 좋다. 어떤 감정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기록하는 것이다. 또한 실패에 따른 자기 비하에서 벗어나야 한다. 실패는 자질 부족 때문이 아니다. 관찰과 시뮬레이션 능력의 부족 탓이며, 이마저도 연습이 부족한 탓이다. 핵심은 자질이 아닌 숙련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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